나호선 2019년 11월 04일

청년정치인의 직업윤리, 그리고 82년생 김지영
더불어민주당 한 청년정치인의 82년생 김지영 논평에 부쳐


사람은 누구나 자기가 처한 입장에서 한 사건을 바라보기 마련이다. 막 애를 낳고 사회생활에서 격리당한 누군가는 김지영의 처지가, 가난한 대학생의 눈에는 김지영의 고가 맥북이, 취준생의 눈에는 그녀가 다니는 회사의 네임벨류가, 90년대생의 눈에는 그 회사는 이제 아무리 고스펙이어도 '입구컷'을 당한다는 서로 다른 불행들이 떠오를 것이다.

각자의 처지가 그렇다는데, 거기까지는 그 누구도 이래라 저래라 할 자격이 없다. 자기가 그렇게 느낀다는데 무얼 어쩌겠는가. 우리 모두가, 이 땅에 살아가는 수많은 이들이 계급, 젠더, 학벌, 지방, 지역감정 등등의 무수한 이유로 불행하다는 것을 이미 알고있으며, 어쩌면 우리 중 상당수도 그 일부에 속해 있으니까 말이다.

나는 92년생이라 82년생의 슬픔을 오롯이 느낄 수 없다. 10년이면 강산이 바뀐다는데, 강산도 모르는데 어찌 사람의 감정을 온전히 헤아릴까. 다만 살면서 목도하는 여러 장면과 누군가의 증언과 책과 영화등의 간접경험을 통해 추정할 뿐이다. 당신은 그 이유로 힘드셨군요. 이제서야 본인의 힘듦을 이야기할 차례가 오셨군요. 당신 차례니까 당신이 충분히 이야기 하시죠. 하며 딱 반걸음쯤 뒤로 물러나 그런 일이 있었구나(있을 수 있구나)하고 알아주면 되는 일이다. 듣는 입장에서는 듣는데 집중하는 것이 제일이다. 당사자가 아니라면 굳이 훈수나 논평에 나설 필요보다는 말이다.

무엇보다 막 철회된 더불어민주당 청년대변인 장종화씨의 논평이 갖는 가장 문제점은 그가 정치인이라는 점에 있다. 정치는, 그것도 세상을 바꾸겠다는 정치는 불행에 등급을 가려 분배하는 것이 아니다. 정치의 바깥에 있는 사람들이라면 누구나 빠지기 쉬운 이' 불행 올림픽'을 끝내보고자 고민하는 것이지, '너의 불행을 나의 더 큰 불행으로 그 입을 막아버리겠다' 선언하는 것이 아니다.


정치라면 그것을 바꾸려해야지, 오히려 정치가 물고 물리는 불행의 악순환을 강화하는 꼴이 되어서는 안된다. 한마디로 이 논평에서는 정치인으로서 가져야할 직업윤리가 결여돼있던 것이다. '청년'을 내세운다고 정치인이 정치인이 아닌게 아니다. 공당 소속의 정치인이라면, 할 말보다 듣는 말이 더 많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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