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창승 2019년 11월 19일

여순항쟁 71주년
지리산도 하얀 소복을 입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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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 죄도 없이 죽은 이들의 뼈가 아프니
살아남은 이들의 뼈도 일생동안 아프고
아프다 못해 당산나무가 울고 돌담이 울고

어디선가 수십만 마리의 되새 떼가 날아와
온 하늘 먹구름의 군무를 추더니
1948년, 여수 순천을 지나 구례 지리산
마을 마을은 희망의 삶터가 아니라 학살의 땅
온통 야만의 역사였다.

마침내 민족화합 생명평화의 때가 무르익었으니
아버지, 어머니, 형님, 오빠, 동생 ㅡ
마음 놓고 불러도 보고 대성통곡도 하고...
<여순항쟁 기념탑중 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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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아부지를 배우요

아부지!
장가를 들어봉께 세상에서 젤 어려운 것이
아부지 되는 것이여라.
아부지 봤어야 아부지가 뭣인지 알 것 인디
꿈속에서도 못 봤으니 어찌 알 것 소잉?
아이를 낳아보니 고슴도치 이야기가 사실이여라
애기 입에서 나온 것 주서먹음서 암시랑토 않고
애가가 싼 똥이 범벅이어도 하나도 안 더러워라,
우리 아부지가 나를 어떻게 이뻐했을 것인디,
꽃같이 젊은 죄 없는 우리 아부지를 왜 죽었으께라 잉?
아부지 없이 세상을 산 엄니는 억시기였어라,
혼자 아부지 몫까지 함시롱 골병이 다 들었지라,
날이 궂으면 끙끙끙 앓았어라,
나는 부부가 뭣인지 잘 모르는 엄니 앞에서
아내 사랑도 자식 사랑도 맘껏 못했어라,
역사는 반복된단디 아부지 없는 아들을 다시는 만들고
싶지 않은께 여기서 그 몹쓸 사슬을 탁 끊고 싶고.
내가 빨간 것은 피 뿐인디 빨갱이 새끼라고해서
뭣인지도 모르고 쥐 죽은 듯이 살았는디
인자봉께 빨갱이는 평등하자는 왼손이고
안 빨갱이는 자유롭자는 오른손이니 서로 짝이서라.
아부지, 죄 없이 몽뎅이 맞음서 얼마나 무서웠소?
느닷없이 총 맞아 쓰러짐서 얼마나 억울하셨소?
아부지, 나도 금방 아부지 계신 하늘로 돌아가믄
우리 아부지 보듬고 엉-엉- 막 울고 싶소.
지은 죄 암껏도 없는 디, 평생 고개 숙이고 산 나를
목마 태우고 덩더꿍 거림서, 온 동네 싸돌아 다녀주라고
조르고 싶어라. 우리 아부지! 내 차에 모시고 한라산
백두산 구경시켜 드리고, 비행기 타고 중국이고 미국이고
딱 한 번만 간다면 한이 없겄소. 아부지! 이제사 동트는
하늘 맨키로 대동세상이 밝아 오는 갑소, 하늘나라에서 부디 맺힌 한 싹 푸시고, 편하디 편하게 계시시오 잉, 술 석 잔일랑 절 두 자리 받으시고, 지금부터 활짝 웃으시오 잉. 나도 아부지 따라서 시방부터 웃고 살라요. 잉! 아부지, 아부지, 우리 아부지!

2019. 10. 2

여수 순천 지구에서 억울하게 돌아가신 아버지께
아들 김용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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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지리산도 하얀 소복을 입었다.


<여순항쟁 71주년, 구례 현충공원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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