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르신이 며칠 째 전화로 재촉중이십니다.
''어이, 언제 올랑가?
얼른와 기다리고 있을 것잉께~~''

약속한 날 섬진강변 그의 집으로 갔습니다.
도착한 어르신네 대문은 열쇠가 잠겨있고 개들만이
담장 안에서 껑껑 짖습니다. 오산 너머로 지는 해를 바라보며 어디로 출타하셨을까? 약속을 어기실 분이 아닌데 어디 아프신가? 궁금증이 밀려왔습니다.

한참을 기다린 끝에 지팡이를 한 손에 쥔 어르신이
어떤 이의 배웅속에 차에서 내리시며 늦어서 미안타 하십니다. 경운기에 이모님을 모시고 나가신줄 알았는데 혼자서 귀가하시는 모습이 외로워 보였고 여섯 마리의 개들만이 그를 반겼습니다.

어르신은 치매 증상이 있는 이모님을 늘 경운기에
모시고 다니시며 어떤 자리에서든 꼭 이모님의 손을 잡고 계셨기에 오늘도 같이 계시리라 믿었던 것입니다.
몇 년 전, 대보름 달집 태우던 오미리 들녘에서 어르신은 저를 손짓으로 부르시며 부탁을 하셨습니다. "어이 김농부, 우리 사진 한 장만 찍어 주시게~~" 논둑에 앉아 손 꼭 잡은 두 분의 사진을 액자에 담아 드렸는데 그걸 고마워라 하시며 가을에 거둔 팥을 주겠노라 '언제 올거냐, 얼른 오라'는 전화 독촉을 하시고 계셨던 겁니다.

집으로 들어선 어르신은 방에 걸려있는 사진을 떼어 보여주시며 몇 번이고 고맙다는 말을 되뇌이십니다. 온기 없는 어둔 방에도 이모님이 아니 보이시기에 '어디 가셨냐?' 물었습니다. 어두운 안색의 어르신은 이모님의 치매가 심해져서 읍내 ㅈ요양원으로 모셨다며 허한 미소를 지으십니다. 하루라도 안보면 일이 손에 잡히지 않아 오늘도 짝 얼굴 보러 가셨다가 차마 떨치고 일어설 수 없어서 이렇게 늦었다 하십니다.

그리고는 별 것은 아니지만 손수 농사지은 것이라며
마루 한쪽에 놓아 두었던 팥과 노랑 메주콩을 자루 채 내어주십니다. '아니어요, 아닙니다' 손을 저으며 조금만 주시라 손을 붙들어도 한사코 안겨주시며 필요하면 언제든 또 오라 하십니다.

또 오겠습니다, 건강하세요!
약속을 드리고 대문을 나와 고샅을 빠져 나오며 뒤돌아 보니 어르신은 손을 흔들며 멀어져가는 이의 뒷모습을 지켜보고 계십니다. 아, 기쁘면서도 슬픈 마음이 이런 거구나 생각이 들며 연로하신 부모님을 홀로 남겨두고 떠나는 자식의 심정이 되어 울컥 뜨거운 눈물이 핑 돌았습니다.

토지면 용정길 19번지, 파란 대문, 정갈한 텃밭의
장세준 어르신(82)은 내일 첫 차를 타고 최순례 이모님(79)을 만나러 읍으로 가시겠지. 가셔서 잘 잤느냐? 안부를 묻고 손을 꼭 잡아주시겠지. 말없이 종일토록 짝 옆에 앉아 계시다가 석양 빛을 등에 지고 집으로 오시겠지. 벽에 걸린 사진 보시며 겨울 긴 밤을 지새우시겠지…

'언제 올랑가?
기다리고 있을 것잉께 얼릉 와.'
내게 전화로 말씀하신 것처럼 그렇게 이모님께도
그렇게 성화를 내시겠지… 몸은 집으로 돌아오면서도
짠한 마음은 그곳을 맴돕니다.


<구례군 토지면 용정마을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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